소멸 위기 마을에 이주민들이 터 잡고 지역 생기 불어넣어
“아아,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청마을 이장입니다. 오후 3시부터 스마트폰 교육이 있을 예정이오니 참석하실 분들은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30일 오후 전북 무주군 설천면 남청마을에 이런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자 70~80대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생강차를 내며 이들을 맞은 이장은 ‘필리핀댁’ 김조이(33·크리스틴 조이)씨였다. 교육에 나선 김씨가 “손주들이 이모들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찾는 게 와이파이지? 화면 맨 꼭대기에 작대기 세 개 있는 게 와이파이여. 따라 해들 보셔. 와.이.파.이”라고 외쳤다. 주민 박창순(85)씨가 “나는 못 하겄다, 와이 뭐라고?” 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지난 30일 오후 전북 무주군 설천면 남청마을에서‘필리핀댁’으로 불리는 이장 김조이(맨 앞)씨가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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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오후 전북 무주군 설천면 남청마을에서‘필리핀댁’으로 불리는 이장 김조이(맨 앞)씨가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영근 기자
올 초 주민 투표에서 70% 지지율로 이장에 당선된 김씨는 2008년 필리핀에서 온 결혼 이주 여성이다. 이민 온 이듬해 딸을 낳은 뒤 내리 아들 셋을 본 네둥이 엄마다. 젊은이들 떠난 이 마을에서 13년째 마을 일 돕다 이장까지 됐다. 주민 서정주(71)씨는 “하루에도 문자를 여러 번 보내면서 ‘김장 소금 가져가라’ ‘정부 택배비 지원 타가라’고 안내하는데 아주 똑 부러진다”고 했다. 무주군청 관계자는 “인구 감소에 고령화까지 겹쳐 요새 이장 뽑기 쉽지 않다”며 “김씨는 우리 군(郡) 최초의 이주 여성 이장”이라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처음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89곳을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했다. 전북 무주군도 이 중 하나다. 인구가 크게 줄어 소멸 위기를 맞은 지역에서, 젊은이들의 빈자리를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다. 이장뿐 아니라 외국인 여성들로 구성된 마을 자율방범대, 전교생이 다문화 가정 자녀인 학교가 전국에서 속속 생겨나고 있다.
충남 보령경찰서는 올 6월 결혼 이주 여성들로 이뤄진 마을 자율방범대를 꾸렸다. 보령서 관계자는 “관내 대천항(港)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이 늘면서, 다문화 가정도 많아지고 있어서 이에 발맞춰 자율방범대도 글로벌하게 꾸린 것”이라고 했다. 방범대에는 중국⋅베트남⋅필리핀⋅일본 등 각국 출신 결혼 이주 여성 22명이 있다. 방범대원 정수현(46)씨는 ‘20년 차 베트남댁’이다. 그는 “마을 봉사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는데 이번에 방범대원이 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우범 지역을 돈다”고 했다. 중국 출신인 최미자(41)씨는 “대원복을 입은 모습을 보고 자녀들이 자랑스러워하더라”며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했다.
http://news.v.daum.net/v/20211101030347299
조선일보 기사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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